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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속도로 가족 (Highway Family) , 2022년
주연 : 라미란, 정일우, 김슬기, 백현진
감독 : 이상문
지갑을 잃어버려서 그러는데, 2만 원만 빌려주시겠어요?
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텐트를 집, 밤하늘의 달을 조명 삼아 살고 있는 기우(정일우)와 가족들. 다시 마주칠 일 없는 휴게소 방문객들에게 돈을 빌려 캠핑하듯 유랑하며 살아가던 이들이 어느 날, 이미 한 번 만난 적 있는 영선(라미란)과 다른 휴게소에서 다시 마주친다.
어떤 영화 인가
인생은 놀이, 삶은 여행처럼!
고속도로 가족 은 인생은 놀이, 삶은 여행처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이 우연히 한 부부를 만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. 이 영화는 모두가 잠시 머물렀다 떠나가는 휴게소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‘고속도로 가족’ 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작한다. 텐트로 집을 짓고 밤하늘의 별과 달을 조명 삼아 유랑하며, 휴게소 곳곳을 캠핑장처럼 활용하는 이 특별한 가족의 일상은 어쩌면 자유롭고 낭만적인 삶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.
그렇지만, 휴게소 방문객들을 상대로 지갑을 잃어버려 기름값이 없다 는 핑계로 2만 원씩 빌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 기우와 그의 가족이 우연히 영선과 얽히게 되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. 영선은 가슴속에 남모를 아픔을 간직한 인물로 고속도로 가족과의 첫 번째 만남에서 아이들이 눈에 밟혀 돈을 건넸다. 그러나 다른 장소에서 두 번째로 만났을 때,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돈을 빌리고 있는 기우와 가족을 발견하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껴 경찰에 신고한다. 이 일로 기우와 가족은 헤어지게 되고, 영선은 지숙과 아이들을 거둬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. 새로운 일상이 주는 작은 행복에 차차 적응해가던 것도 잠시, 이 두 번의 우연한 만남이 틔운 작은 불씨는 기우의 돌발행동을 불러일으키고, 이로 인해 이야기는 점차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.
모두가 스쳐 지나가는 곳에 자리를 잡아야만 하는 사람들
차가운 현실을 밝히는 따스한 희망
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되며 월드 프리미어로 첫 선을 보인 고속도로 가족 은 상영 직후 열광적인 관객 반응을 끌어내며 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로 떠올랐다. 배우 라미란, 정일우, 김슬기, 백현진의 낯선 눈빛과 뛰어난 연기력, 그리고 사회 문제를 흥미로운 스토리에 녹여낸 이상문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과 따뜻한 시선이 깊은 울림을 자아냈기 때문이다.
고속도로 가족 은 모두가 스쳐 지나가는 곳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는, 그러니까 한 곳에 뿌리를 내린 채 살아갈 수 없어 위험한 길 위로 내몰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. 누군가에게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처럼 보이는 그 삶을 조금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면 누구나 알 수 있듯, 이들은 자의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다. 시속 100km의 차들이 지나가는 차도와 인도 사이 한 뼘 남짓한 길을 따라 줄지어 걷는 네 가족의 모습은 불안하고 위태롭다. 한편, 차마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어 낯선 이에게 손을 내민 영선은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이웃이다. 그녀는 누군가 쓰다 내놓은 가구를 일일이 씻고 윤을 내며 새로운 쓰임새를 찾아주는 동시에, 사회적 재난으로 아들을 잃은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인물이다. 이상문 감독은 타의로 사회의 안전망 바깥에 놓이게 된 사람들과 거대한 슬픔에 못 박힌 채 같은 시간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의 만남을 통해 분명히 존재하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던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게 만들 뿐 아니라, 지금 우리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만든다.
시멘트와 아스팔트 위, 한 줌의 흙과 따뜻한 볕만 있다면 싹을 틔울 수 있는 민들레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는 유랑하던 한 가족을 품에 안고 희망의 꽃을 피운다. 영화 <고속도로 가족>은 차가운 현실의 온도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상문 감독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자, 우리 모두 함께 살 수 있다는,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다.
영화속에 숨어있는 더 많은 내용들을 찾는것도 또 다른 재미입니다.